RPG게임은 Role-Playing Game. 말 그대로 ‘역할놀이’를 하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왜 사람들은 굳이 다른 역할을 맡고 싶어할까?
왜 현실의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이 되어 게임을 하고 싶어할까?
과거의 RPG는 내가 세계관 속 ‘인물’이 되어 모험하는 체험에 중심을 두었다.
우리는 내가 아닌 인물이 되어 그 인물의 삶을 살아봤다.
용사가 되어 세상을 구하고, 사랑하는 이를 잃어보기도 하며…
우리는 역할을 맡고, 세계관에 몰입하여 그 역할을 연기했다.
온라인 게임의 시대가 되며, RPG는 변했다.
언제부턴가 RPG는 “역할놀이”보다는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장비 강화, 보석 세공, 마법 부여 등 수많은 성장 요소가 생겨났고,
게임 속에서 더 강해지고, 더 높은 수치를 얻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내 캐릭터가 누구인가?’에 관심을 두지 않고,
‘내 캐릭터가 얼마나 강한가?’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 변화 속에서 RPG는 ‘성장의 게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본래의 뜻인 ‘역할놀이’는 점점 희미해졌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언제 어디서나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자,
이 성장 중심 구조는 클리커형 RPG, 키우기류 게임으로 확장되었다.
클릭 몇 번만으로도 수치가 오르고,
수치를 경쟁하는 랭킹 시스템은 도파민을 자극한다.
빠르게 성장하고, 눈에 띄는 숫자가 쌓이는 쾌감.
이것이 키우기 장르가 유행하게 된 이유다.
하지만 유저들은 곧 허무함과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성장 자체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성장과 랭킹은 타인에게 증명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아무리 캐릭터가 강해도,
그 강함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없다면,
그건 결국 자기만족에 그친다.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캐릭터를 키웠지만, 이를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그 성장은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최근 일부 RPG에서, 높은 투자를 한 유저들이 ‘내가 이만큼 했다는 걸 왜 아무도 몰라주지?’라는 불만을 터뜨리고 게임을 떠난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과도한 성장이 아니면 게임을 즐기기 어려운 구조는
신규 유저의 진입 장벽이 되어, 커뮤니티의 순환을 막는다.
이 '증명의 무대 부족’과 ‘투자 강제의 불균형’이 많은 RPG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다.
우리는 왜 RPG를 하는가?
성장을 위해서인가? 강해지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강한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인가?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필요하다.
성장을 증명하기 위해선, 단순한 수치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수치를 보며 감탄하지 않는다.
‘그 수치를 어떻게 활용했는가’, ‘그 캐릭터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에 주목한다.
결국 역할을 수행하는 것, 그 안에서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취이며, RPG의 본질이 다시 ‘역할놀이’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다양한 역할이 필요할 수 있도록 과제를 제시해주어야 하므로 고려해야하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RPG는 단순히 캐릭터의 수치를 올리는 게임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세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장르다.
RPG의 미래는, 다시 ‘역할의 회복’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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